문을 열면
달그닥 달그닥 찾아온
고개 숙인 겨울이 있다.
11월,
코로나가 한층 기승을 부릴 때
쌓인 과제도 풀겸 안방 1열에서 모처럼 영화를 봤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는 4가지가 있는데
가볍게 영화를 보고 그 평(評)을 쓰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
짬을 내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영화 <국도극장>은
사법고시가 폐지되어 낙향한 만년 고시생 기태가
전남 벌교의 낡은 재개봉 극장의 매표담당 기도가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 우리들의 극장에는 입구에서 표를 체크하는,
덩치 좋은 직원이 있는 데
이러한 직업을 기도 라고 했다.
기태와 극장 관리인 오씨, 그리고 기태가 오기 전
바로 그만 둔 영은(이상희)과의 살갑고 안타까운 감정의
흐름과 함께 아픈 엄마를 사이에 두고 형과 기태의 불편한
갈등이 야기하는 2가지 이야기 축은
삶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사는 게 지금 괜찮은지?
묻게 된다.
간판장겸 극장 관리인이자 스스로 실장이라고 칭한
오씨와 낙향한 기태는 내면의 감정을 숨긴 채
둘이서 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취직을 부탁하려고 고향친구를 만나고도
말한마디 못했던 낯간지러운 모습 뒤로
아픈 엄마의 생일에 한바탕 형하고
다투기도 하고,
초등학교 동창생 영은의 풋풋한 생활 방식에
푹 빠져
여름이 되었지만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냉장고에 리모콘을 넣어두고 항상 손으로 TV의 채널을
돌리는 엄마(신신애)의 모습에서
형과의 갈등도 잠시 놓아둔 채로
오씨와 기태 그리고 엄마는
셋이서 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민 간 형이 마련해준 요양원으로 가는 엄마에게
빨간 립스틱을 선물하지만
가을 직전 극장 앞 마당에 피어난 작은 들꽃을 보면서
오씨는 암을 고치고자 떠나고....
결국
기태 혼자 남게 되었다.
영화 <국도극장>은
대형간판을 걸어놓고 손님을 받는다.
그리고 극장 간판은 극중의 주인공 기태의 마음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통해
주인공 기태의 낙향한 감정을 표현했다면
잠시 영은과의 만남을 통해 고향의 끈끈한 모성을
느끼면서 평온했던 마음을
영화 <첨밀밀>로 묘사했다.
그리고 잠시지만 삶을 거꾸로 돌리고 싶었을 때
극장간판은 영화 <박하사탕>으로 변하였다.
기태 혼자 남아서
오씨가 생각하는 영화다운 영화 <영웅본색>의 간판이
내걸릴 때면
세월 앞에 무상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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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가정이 복잡해서 중학교 졸업도 못하고
파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해동극장>이 있었는데,
영화처럼 매번 상영하는 영화가 바뀌면
대형간판을 내걸었다.
당시만 해도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 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그곳에서 일하는 영사기사와
사귀는 것이 행운이었는데...
극장 앞 중국집 주방장 보조와 영화관 영사기 보조
그리고 나는 셋이서 자주 어울렸다.
극장 간판쟁이를 구한다고 해서 그곳에 취직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 때 만약 내가 극장간판 일을 배웠다면
어찌되었을까 싶어
영화를 보는 내내 새로웠다.
p.s
여성감독이 드문 현실에서 전지희감독은
명필름 랩 3기 출신으로 첫 장편 <국도극장>을
찍었다.
아무 데나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기에
비록 내가 원했던 모양과 시간, 장소가 아니라도
지금 피어있는 꽃이자 자아는,
바보 같은 위안에 피식 웃게 해주고 싶어서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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