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평상 시 게을렀던 지연(之緣)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점심 약속 장소를 확인 후
주말의 아른한 기운을 털고
지연은 ABC쥬스 대신
칵테일 우유(우유+바이오유산균+알로에)로
아침을 마신 뒤 조간을 들추다 신호가 오면
화장실을 갔다가
늦지않게 샤워 후 10시 10분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충무로까지는 보통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출퇴근 시간을 잘 맞추어야 했다.
오전 10시30분에 시동을 걸면
45분에서 55분 정도 소요되고,
오후 5시가 넘어 출발하면 90분 정도 걸리기에
오전 출발시간을 10시10분으로 정했지만
점심에 먹을 필수 약(?)을 챙기고,
물과 커피 게다가 마스크까지 착용하다보면
어느 새 시계는 10시20분을 훌쩍 넘게 된다.
오늘은
A투자사 B본부장과
C카드사 데이터 인텔리젠스 D본부장과
한 달에 한번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출간할
책에 대하여 상의하는 날이다.
그저 밥만 먹고 헤어지기보다는 좀더 유익한 만남이 되고자
스치는 생각을 붙들어 밥상에 올리기로 했는데
첫 주제가 책을 출간하자는 것이었고
즉석에서 업무 분장을 하고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제목까지 가칭 'AI마케팅'이라고 잡았다.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과연 오늘 주제가 맞을 지 판단이 안되었다.
내심
책에서 이직에 따른 진로(進路) 상담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지난 주 D본부장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금년 초에 부임한 사장이
회사를 좀더 젊게 만들고 싶다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7월 말에 정리하기로 했다고 할 때
순간 물 먹다 사레들 뻔 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네이버에 들어가보니
사장이 젊었다.
1974년 생으로 만으로 47세 였다.
최근 트렌드가
ESG와 글로벌 그리고 디지털 혁신(DX)인데
본인이 글로벌한 감각과 경험을 갖추고 있기에
ESG파트와
디지털 혁신을 담당하는 CDO을
젊은 인재로 세대교체하겠다는 생각을 거부할 수 없어서
그만 두기로 했다고 하길래
아, 그럴 수 도 있구나 싶었지만
쓸쓸한 현실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연은
이순(耳順)이 지나고 나니
새삼 나이 50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69년생에서 72년 생까지
그들은 활기차고 의욕이 넘쳐서 부러웠다.
짧게는 9년에서 12년 차이가 나지만
그들이 펼칠 세상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딱 5년만
쉰 살에 양보하면서
자신을 돌아다보기로 했는데.....
지연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다보는 계기가 생긴 것은
얼마 전 정년을 맞아
용평으로 가면서 전화를 주신 두 교수님 때문이었다.
들에 피는 꽃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55년 생 선배들을 떠나 보내고
총총 걸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얻은
결론인데.....
그들도 변화하는 세상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다니 대략난감했다.
유튜브에서
나훈아의 테스형을 찾아서 미디어로 연결했다.
창 밖으로
삐져나가다 에어콘 바람에
흐트려져 버린 담배 연기처럼
처량하게 들려왔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아랫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고
금화터널을 통과할 즈음 갑자기 신호가 왔다.
분명
지연은 아침에 화장실을 갔다왔는데
어째서 그런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산 금정구에 가면
노래방 기기 회사 금영엔터테인먼트 근처에
"똥싼 바지" 라는 카페가 있었다.
30 여 년이 지나서 없어졌을 지도 모를
그 카페 이름까지 떠올리면서
참을 만큼 참았지만
목덜미에는 식은 땀이 방울방울 맺히는 것 같았다.
조수석 밑에 하얀 쓰레기 봉투를 보면서
급하면
차를 세운 뒤에
뒷좌석에서 저 봉투에 볼 일을 볼까 했지만
바삐 움직이는 도로가 받아주지 않았다.
중학교 때
면목동에서 남가좌동까지
205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너무 배가 아파서
아무 데나 내렸는데
다행스럽게
창경궁 앞 공중화장실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까지 끄집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공중화장실은
지금처럼 화장실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부드러운 휴지도 없었고
신문지조차 안보여서
어쩔 수 없이 노트를 뜯어서 연하게 만든 뒤
해결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수석에는 부드러운 티슈도 있고
하얀 봉투가 입을 벌리고 있지만
잠깐이나마
차를 세울 자리가 없었다.
신호가 3번 째 오니까
지연은
어찌할 수 없었다.
목적지까지는 15분이나 더 가야하고,
참을 만큼 참았으니
조계종 본사라도 들어갈까 주춤거리다
경적을 울리는 뒷차에 밀려서
종각 사거리까지 왔다.
신호등을 핑계로 설까?
말까?
나도 모르게 핸들을 꺽어
우측으로 들어가는 앞 차를 따라 들어간 곳이
SC제일은행 본점이었다.
지정주차였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이 멀었고
입구가 아주 시원하게 보였다.
4번 째 신호를
참으려고 비비 꼬다보니
경비원에게 눈에 띄였다.
나에게
그가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
......... ? .... ! ....
그렇게 급한 데도
잊지않고 마스크 쓴 내 얼굴이
거울에 보였다.
X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를 생각하면서
시동을 걸고
지상으로 나오니
하이파킹 부스가 보였다.
최소 10분은
무료인 줄 알았는데
2000원이 나왔다.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지연은
어쩔 수 없이 비싼 화장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기에
혼자서
흥얼거린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렇게 비싸~~~~
2021. 7. 26
세월을 쓰다_김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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