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世月)을 읽다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1월에서 12월이 지나면 그 다음(Next)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삶의 지루한 변명의 연속인지?
아니면 달콤한 장미빛 꿈의 연장인지?
식상한 답이 돌아왔다.
작년 12월1일, 오픈 API가 공개한 챗GPT(ChatGPT)가
출시하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물을 생산하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텍스트, 오디어, 이미지 등 콘텐츠를 활용해서
유사하지만 독창적인 내용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누구나 갖게 되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호기심을
챗팅으로 풀어주고 이것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출시 50여 일 만에 사용자 수가
천만 명을 돌파하였다.
데이터와 검색 정보를 최적화해서 오류가 없는 문장을
만들은 뒤 단 하나의 결과만 보여주기에 “구글링”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인간과 대화하고,
상황과 분위기만으로 소설, 시, 평론도 몇 초 만에
완성할 수 있다길래 나도 시도해봤지만
자의식이 없어서인지 원하는 고민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음력 섣달그믐,
일찍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변할까,
핑계삼아 거리로 나갔다.
1월에서 12월을 지나 다시 1월이 오기 전에
아쉬움 가득 묻어
돌아보면,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올 것 같은 데 손에 쥘 수 없는 세월(歲月)을
19년 만에 7번 온다는 윤월(閏月)로 위안을 삼았지만
허전한 공백을 무엇으로 메꿀지 수시로 묻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굴곡진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세월(歲月)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항상 다음(Next)을 기다려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음(Next)은 무엇이 올까?
달은 초승달, 상현달을 거쳐 가득 차면 보름달이 되고,
다시 줄어들면서 하현달, 그믐달이 되는 데
섣달그믐에 뚝방길을 걸으면서 선배들은
왜, 달을 보고 살았을까?
『 세월(世月)을 읽다 』
그리움에 가려서 현실이 잠시 도망갔다가
갈등이 생기면 찾아오기에 또 다른 수단을 갈구하게 된다.
헛것을 뒤집어쓰고 살았다는 현실의 죄책감을 잊고자
겨울이 익을 만큼 익을 때 또 다른 계절이 있다고 믿고
찾아 떠나게 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희망”을
마음 속 깊게 간직하지만 시간에 반비례해서
더 커진 비즈니스의 속성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대립적 세계관이 아니라
디지털을 무기로 서정적 자아(自我)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 변하고,
가상 세계에서 자아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아바타와 캐릭터를 만들어
특정한 세계관을 설정하고 있다.
생활과 소비의 틀을 바꿀, 블록체인 기반의 웹 3.0 시대에
크리슈머(Cresumer)는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로 생태계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일치를 찾고자 노력하는
진정한 서정적 자아(抒情的 自我)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달나라 맵(map)에다
타일(tiles)을 깔고
(중략)
어릴 적
허리띠를 질끈 동여맨
철거민을 따라
새끼줄로
땅따먹던 성남(城南)처럼
(중략)
꿈마저
돈이 되는 달덩어리
(중략)
후손들은
지붕없는 달에서
쌀을 심고
보리를 뿌리며
웹툰(webtoon)으로
희망을 쏘아올린다.
『 6월에 쓰는 편지 』
세상의 달(月)은,
바라보면서 현실을 잠시 잊게 되지만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 앞에 서서 뒤돌아보니 그 또한 달 앞이라'
(月前顧後每是前) 라고 했듯이
자아(自我)가 세상의 달(月)를 찾아 살아가는
세월(世月)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음(Next)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세월(世月)을 찾아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부족한 시간(時間)을
쉬게 만들어 주는 자아의 공간(空間)이기도 하다.
그 곳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가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다.
웹튠(webtoon)이 원천 콘텐츠로 주목받게 되면서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언제까지 노래만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기에
자아와 세계가 대립하지 않고
일치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공지능(AI)이 상황과 분위기만 조성해주면
시(詩) 한 편 뚝딱 만들어내는 세상이 왔다.
그렇다면 현실의 시(詩)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
시대나 상황에 따라 시적 내용이 다양해질 수는 있지만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시(詩)는 주관적인 상상에 의한 세계관를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인간 내면의 섬세한 정서를
살뜰하게 포착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현실은 삶의 원천이며
창의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자연을 노래하든 비즈니스의 가치를 평가하든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삶의 지향점을 찾아주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친하고 다정한 것 몇 안되지만
정오(正午)에
가을 햇살
집나간 남자(男子)를 찾는다
『 가을소묘(素描) 』
등 떠밀려 살아온 많은 시간(時間)들을
시(詩)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다음(Next, 未來)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현실을 노래하면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음에
세월(世月)이 존재하지 않을까?
가을은 중천에 뜬 둥근 보름달 같기에
나에게 시(詩)로서 존재하고,
세월(世月)을 위한
마지막 감정(感情)의 노래가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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