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숙, 제30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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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추(美醜)

서이숙, 제30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하다

by 세월김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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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 제30회 수상자로
배우 서이숙(徐梨淑·53)씨가 선정됐습니다.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회는 "서이숙은 무대 위에
자신만의 빛깔이 있는 연기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해랑상 30주년에 걸맞은 무게감과 올곧은
  연극 정신을 갖춘 배우"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인생 자체가 연극인 여자… 서이숙
1967년 경기도 연천 시골에서 태어났다.
국극단이 약 팔러 오는 것 외엔 연극 비슷한 것도 없었다.
1987년 수원 한 극단에 입단, 1년여 만에 전국연극제
여자연기상을 받았고, 1989년 입단한 극단 '미추'에서
2003년 '허삼관매혈기'로 주목받기까지 15년을
주역 한 번 못 해보고 무명 생활을 견뎠다.
 
"한 번도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배우 서이숙을 보러 관객들이 몰려 올 것을
믿었어요."
좋은 말로 대기만성이지만,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시간의 공력을 쌓은 세월이었다.
구히서연극상(2003), 동아연극상(2004) 등을 받으며
'대학로 블루칩'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하는 배우의 전형이다.
'열하일기 만보'에 출연할 땐 열하일기 원전과
관련 책을 다 찾아 읽었고,
'엄마를 부탁해'에 출연할 땐 신경숙의 전작을 섭렵했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니 더 단단한 연기를
준비하고 싶었어요.
배경을 공부하니 대사도 더 정확해지고,
남들과 다르게 표현할 자신이 붙더군요."
 
국립극단 창단 공연 '오이디푸스'로 갈채를 받고,
'고곤의 선물' 재공연도 예정되며
배우로서 본 궤도에 오르던 2011년,
덜컥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포메라니안 강아지 두 마리를 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무대에 서기엔 목이 회복 안 돼 TV 드라마를 시작했다.
"사극에 대전상궁으로 출연했는데, 고개 빳빳이 쳐들고
깡패처럼 대사를 쳤어요.
'저 상궁 누구냐'고 난리가 났어요,
하하! 서이숙만의 접근법이 통한 거죠."
'호텔 델루나' '부부의 세계' 등에서도
주연 같은 조연으로 각광받았다.
 
2시간여 토론 끝에 "30년 넘게 꿋꿋이 무대를 지키며
배우로서 신뢰를 쌓았고, 끊임없는 단련과 노력으로
자기만의 빛깔이 있는 독창적 연기 세계를 구축했으며,
늘 무대를 최우선하는 올곧은 연극 정신을 지켜온
배우 서이숙이
이해랑 정신에 부합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또 "발성이 매우 정확하고 연기에 과잉이 없는 배우로,
앙상블을 중요시 하는 연기관 등이 이해랑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 정신과 맞닿는다"는 평이다.
 
                              <30회 이해랑 연극상 심사위원>
             유민영·손숙·김윤철·박명성·한태숙·길해연·김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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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새벽에 조선일보를 펼치면서 졸음이 도망쳤다 ㅎ
 
밤을 도와 작업을 한 뒤에 마무리로 조간신문을 보는 데
평상 시처럼 덤덤하게 1면을 보다가 깜 놀랬다.
<알립니다> 이해랑연극상에 배우 서이숙이 선정되었다는
활자를 보는 순간 얼떨떨했다.
배우 출신의 연출가인 이해랑 선생을 추모하고자 만든
이해랑 연극상에 배우 서이숙이가 선정되었다니?
 
내가 알고 있는 배우 서이숙과 내가 배운 연극의 세계가
일치하지 않아서 잠시 머리가 띵했다.
 
30년 전 극단 미추에 입단해서 만났던 서이숙이가
이해랑 연극상의 주인공이고,
연기관이 이해랑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정신과 맞닿는다고 하는 선정평(評)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나에게는 그저 평범한 배우이면서 가끔 TV에 목소리가 튀어서
돌아다보면 배우 서이숙이가 단역으로 나왔고
또 세월이 흘러서 사극(史劇)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목소리와 어울려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속으로
응원을 하던 이숙이가 이해랑 연극상의 주인공이 되다니....
 
내가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싶었다.
극단 미추의 손진책대표가 40대 기수로 연극협회 회장 선거를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30대 였고,
극단 미추의 김성녀선생이 평범한 배우에서
중앙대 음악대학원장에다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까지
오를 때도 중앙대학교에 박범훈총장이 있었구나 싶었는데.....
 
극단 미추(美醜)의 이름을 지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TV 모습에서 과연 철학가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심사위원 명단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극단 미추3기 대성리 MT

이제는 30여년 전의 촌스럽고 친숙한 이미지의 서이숙이
아닐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세월은 그렇게 다 변하게 만들고,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린 것인가 궁금했다.
 
어찌되었든 주위에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극단 미추 3기의 일원이었는데
그 중에서 배우 서이숙이가 내 동기였다는 점을 알려야겠다.
 
혹 이 소식을 듣고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
#극단 미추 3기 단원들이 다시 연락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들과 시간을 꺼꾸로 돌리면서 그 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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