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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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미친 짓

가을 골프

by 세월김 202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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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메이플cc OUT코스 8번 홀 전경

새벽 6시,

바람은 잦아들었으나

파도 소리는 여전히 전투기 이륙하는 소리를 내고

비는 부슬부슬 날리고 있었다.

 

가왕 조용필의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추석 연휴 특집을 보고자

서둘러 횟집을 찾을 때만 해도

바람과 비와 파도는 

거칠었는데....

 

컵라면에 물을 부은 후 

햇반의 고슬고슬한 느낌 그대로

깻잎에 얹어

한입 가득 입에 넣을 때

104호에서는 새벽 골프 라운딩 준비로 부산했다.

 

골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속을 취소할 수 없기에

살짝 비정한 느낌을 갖고 있다.

오죽하면 

본인 사망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기 전까지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골린이에게 기본으로 자리잡았을까?

앞에는 그린이, 뒤에는 바다가 지키고 있는 메이플cc

 

파도 소리에 빠져들었다.

 

자꾸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늙어가고 있다는

징조인데

혹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한 곳은 없는지?

찾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골프는
가을을 밟을 수록
바람에 뒹굴다
스쳐지나간 이야기들을 그린에 올려놓는다.

길게는 12시간에서 짧게는 6시간 동안
풀꽃들에게 물어보다
아쉬워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지만
잔듸 속에 묻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한 해가 훌쩍 떠난다.

다시 만난 그 때 그 골프장에서
사람이 보고 싶어
붉어진 눈으로
추억을
가득 담고 돌아오는 야릇한 골프.

빚을 내서라도 가야 한다는
가을 골프가 그리워
걸을 때 마다
바지 자락 밑으로 공이 구른다.

 

날씨 요정이라고

원우들이 나에게 붙여준 애칭이

바닷바람에 날라가고

시간도 머무르는 메이플cc를 벗어나 

지나 간 시간을 찾고 싶었다.

 

속초의 황태해장국집인 <두메산골>을 가려다

넘 멀어서

강릉 순두부 거리로 방향을 잡았다.

 

추석 연휴라

순두부 거리는 만원이었고

맛보다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너무 자주 가서 

창문만 열면 바다가 보일 것 같은

안목해변에서 살찐 파도를 만났다.

 

추억이 통통하게 모래 사장을 채운 탓인지

아들과 딸이 보고 싶다고 

갯바위 위에 갈매기가 한참을 머물다 떠났다.

안목해변에서

 

강릉 커피축제 상징물 속으로

 

 

재난 사태까지 선포될 정도의 극한 가뭄에 시달렸던

강릉에

비가 많이 내려서 좋지만

2박3일 가을 골프 일정을 바꾸어 놓았다.

 

어제는

우천으로 인하여 3부 자체가 취소되었는데

파도와 비와 바람이 

잔잔해진 것을 보니 

오늘은 라운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게 차이는 없지만

골프장은

1부는 6시~9시, 2부는 11시에서 2시,

3부는 5시 이후에 티업을 한다.

 

이번에 3부 티업을 예약한 이유는

2인 플레이가 가능했기 때문인데

비까지 동반할 생각은 없었다.

 

골프 인생 20여년 만에 

3부 티업은 

이번이 두번 째이다.

메이플cc OUR코스 8번 홀 야경

 

재작년 

졸업여행으로 찾은 골프장의 야경이

눈에 아른거려

버스 안까지 올라가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한 뒤

3부 티업을 시작했는데

전반 6홀 즈음 비가 너무 내려 포기했다.

 

일행들을 보내고 

몰래 3부를 예약했기에 벌을 받았을까?

 

저만치 가을 향기가 사라지고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을 아는 지 

비도 이슬처럼 어깨에 사뿐하게 앉아

라운딩하기에는 시원했다.

 

6번 홀 Par3에서

골프 입문 10년 만에

첫버디를 기록한 집사람 덕분에 

야간 라운딩에 탄력이 붙었는데

8번 홀 부터는

굵어진 이슬비가 안경을 가렸다.

 

우천으로 경기팀의 승인 하에

홀 별 아웃이 가능하다는 문자도 받았겠다

캐디와 작별하려면

9홀까지 라운딩 후 결정을 해야 했다.

 

10홀 부터는 

캐디피는 홀 별 정산이 불가능하기에.....

 

이대로 끝내야 할 것인가?

 

후반부터는 

비를 따라 가는 지

바람을 따라 가는 지

잃어버린 공의 숫자 만큼 발걸음도 무뎌져

우산마저 카트에서 쉬고 있었다.

 

우리들의 젖은 블루스를

끝내고 

허기를 채우려고 문을 열었더니

파도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하얀 포말이

밤바다를 지키는 동안

가을은

온몸으로 젖었지만

가을 골프은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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