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UB GolfClub
골프를 시작한 지 2년 차,
몽골 울란바토르로 출장을 가야 하는 데 골프채를 가져갈 분위기가 아니어서 고민이 되었다.
7월3일 토요일 2시까지 공항갈 것을 생각하고 내친 김에 연습장이라도 갔다 올까 하다가 집사람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놀라서
꼬리를 내리고 하나 씩 둘 씩 조용하게 준비를 했다. TV에서는 토요일이면 내가 즐겁게 보는 <아침마당>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몽골의 IT진출 방안에 따른 출장을 어떻게 골프와 연관시켜 골프채를 가지고 가느냐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7번 우드와 7번 아이언 그리고 어프로치와 퍼터를
두개씩 테이프에 감아서 집사람 눈치를 보면서 "음, 교수들이 채를 가지고 가나봐! 그래서 나도 가지고 오래" 하면서
헛기침과 함께 조용히 몽골의 골프는 시작되었다.
몽골(Mongolia)은
역사적으로 볼 때 원나라를 세웠던 민족으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지나 지금의 동유럽를 차지하고,
동쪽으로는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문화재에 상처를 주었고,
제주도에 몽골말의 종마장까지 만들어 일본을 정벌하고자 시도하다 그 유명한 가미가제(神風, かみかぜ)라는 어원을 만들었으며
남쪽으로는 인도의 근처까지땅을 넓히고 운하를 파서 세계의 중원을 지켰다.
특히 서양에 화약과 나침판 그리고 종이를 전달했음은 물론 오늘의 동양을 있게 한,
동양의 자존심을 세워준 민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아울러 몽골은 바이칼을 배경으로 인류를 탄생시키기도 하였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 영화(榮華)가 명나라의 쇄국으로 서양과 격차를 가져오게 하였고 축소된 조선을 가져다 주었음을 알게 되면 다소 쓸쓸했지만....
2004년 7월의 몽골(Mongolia)은,
중동의 사막과 동일하게 일년 강수량이 250mm 정도인데, 7월과 8월에 90% 이상을 다 쏟아내고,
한여름 40도의 고온과 한겨울 50도에 육박하는 추위와 싸우면서 사람은 사람대로, 가축은 가축대로
아스팔트처럼 군데군데 파이고 헤지고 찢어져 치료받아야 할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국민의 반 이상이 가난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부랑아로 전락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 옛날 원나라의 기상이 살아 있었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밤이 찾아왔고, 밤을 보내자마자 아침부터 차를 타고 자그만치 8시간이나 초원을 달려
캠프에 도착하였다. 몽골의 캠프는 우리의 민박이나 펜션과 같은 휴양지의 숙박시설인데 그곳에서 잠도 자고, 낚시도 하고,
말도 타게 된다. 몽골에서의 식사는 풀풀한 쌀밥에 양고기 스프정도인데 여름 내내 말젖으로 만든 마유주를 마시고,
양를 잡아서 직접 찜을 해먹거나 바베큐을 해서 자연의 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한여름이라도 한국은 9시가 넘으면 어두워지지만 몽골의 저녁은 백야로 인하여 10시30분까지 환하게 밝았고
새벽 4시면 쏟아지는 태양열에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로 밝고 투명한 게르(Ger)에서의 아침도 잊을 수 없었다.
다만 인터넷은 둘째치고 전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이다보니 낯선 이국 땅에서 일주일 동안 후기(後記)를
쓸 수 없어서 아쉬웠다.
3일은 서쪽에서 보내고, 2일은 동쪽에서 보내고 나니
몽골의 7일은 정말로 짧은 것 같았다. 특히 열악한 도로 시설 탓에 피곤이 더했다.
그래도 북쪽의 바이칼 호수(원래는 몽골의 땅이었는데, 몽골의 왕이 러시아에게 시원한 물을 드시라고 그냥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와 남쪽의 고비사막을 가보지 못해서 서운했지만 나중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을 만난 뒤 울란바토르로 귀국하는 일정을 기약하였다.
간밤에 한바탕 쏟아붓는 비바람에 과연 라운딩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고민과 함께 나는 선 잠을 자고 말았다.
얼마나 어렵게 가지고 온 골프채인데, 하늘이 나의 정성을 감안한다면 꼭 라운딩할 수 있게 해주리라 믿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먼저 호텔에서 아침부터 실랑이를 가졌다. 체크아웃하는 데 먹지 않은 하이트 맥주 2캔을 먹었다고 우기면서
돈달라는 데스크에게 증거로 빈 캔을 달라고 해도 주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돈을 달라고 해서 그냥 주고 왔다.
그리고 찾아간 몽골의 골프장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티잉그라운드(Teeing ground)인지 페어웨이인지 구별이 안가는 풀밭에다 판자로 장승같은 홀표지판을 세우고,
축구공과 배구공에 빨간색과 하얀색을 칠하여 티박스로 사용하는 UB Golf Club.
군데군데 하얀 줄로 쳐놓은 것이 오비고, 빨간줄로 쳐놓으면 헤저드인 골프장.
교민신문에 무슨 보고배 골프대회니 하면서 광고가 실려져 있기에 이처럼 처참한 골프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빨리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순서를 정하고 순서대로 티샷을 하자 갑자기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달려가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이름하여 Ball Boy였다. 티샷이 날아 가는 방향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서 떨어진 공 옆에 표창(標槍)을 꽂는 행위가
너무 상큼했다. 게다가 앳된 얼굴에 썬글라스를 끼고 담배까지 폼잡고 피어대는 통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랐다.

첫 홀이 끝나가면서 우리는 이렇다할 내기를 할 수가 없어서 일등하면 말타고 홀 한바퀴 돌기로 하고
통통 튀는 그린을 상대로 퍼팅를 하지만 참말로 인내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소똥과 말똥이 범벅이 된 진흙을 상대로
라운딩을 한다는 것은 짜증 그 자체였다. 특히 9홀 퍼브릭에 그린피 20불과 캐디피5불을 내면, 두번 도는 줄 알고 비오는데도
불구하고 힘겹게 웃으면서 쳤는데...아뿔싸 비 옷도 벗기전에 가이드한테 들은 추가 요금은 우리 모두를 열받게 하기 충분했다.
재미도 없는 9홀을 2번 돌아보세요? 게다가 부가세 15%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UB Golf Club.
달랑 공 하나 들고 가서 잃어버리고, 우연히 줏어든 공으로 치다가 소똥에 박혀서 나올 줄 모르는 공을 바라보는 심정,
그 누가 알아주겠나요?
결국 점심도 지겨운 양고기 복음으로 때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국노래가 듣고 싶다는 젊은 가이드의
요청에 <올챙이송>을 부르고, 몽골의 어머니에 관련된 노래를 답가로 들으며 몽골에 작별인사를 하였다.
귀국한 뒤 아침의 따사한 햇살을 받으면서 몽골이 생각났다. 잠시 그 곳에 두고온 기억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꺼내보기도 하고
생각나지 않는 것은 찾아보기도 하고....그러다 오늘 외국계컨설팅회사(IBM BCS)에 가서 몽골에 대하여 새로운 각도로
컨설팅하는 컨설턴트를 만났다. 그 컨설턴트가 말하는 요지는 첫째로, 지난 천년간 지구를 지배했던 문명은 기독교문명보다
이슬람문명과 중국문명이었고, 그 중에서 몽골제국, 즉 징키스칸제국을 만들었던 징키스칸과 쿠빌라이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과 둘째로, 13세기의 모델이 7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에 세계화 내지는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기에
우리는 유목민처럼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생각하고, 말하고,먹고, 꿈을 꾸라는 했습니다.
좋은 말이었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직장이나 과거에 갇혀서는 안되고 다르게 지내고 다름을 만들어야 한다.
즉, 끊임없이 학습하고 수련하여 변화를 주도하고 창출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생각하니 디지털 전환(DX)이나 인공지능 전환(AX) 나아가 직업 대전환(Job Transformation·JX)까지
20여 년 전에 미리 알려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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