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심천(深圳)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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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미친 짓

중국 심천(深圳) 골프

by 세월김 202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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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중국의 심천(深川 Shenzhen) 을 가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하루 전에 병원에 가서 감기에 맞는 약을 맞추고 쌍화탕도 5병이나 챙겼다

아쉽다면 싱글 두 분이 참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분은 모친이 위급해서 대기 중이고, 또 한분의 싱글은 방송통신위원회 긴급 소집이라서 못오고 되었다.

 

아쉬움을 비행기에 싣고 탔지만 와인 한잔에 감기가 툭 터져나왔다.

장기 주차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골프백 매고 뛰어다닌 것이 도사리고 있던 감기를 밖으로 나오게 만든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심천(深川 Shenzhen).

심천은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이며 상공업도시로서 중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이자 글로벌 최첨단 산업이 몰려있는

'중국의 실리콘벨리'라고 할 수 있으며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 할 수 있는 도시다.

광동성 남부 해안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가 300만 명이고 연 평균 기온은 22.4℃이며,

홍콩과 광저우(Guangzhou)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국의 주요 대외무역 중심도시이자, 가장 일찍 개혁과 개방이 실시된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천시 외곽에 위치한 전(全)사장님  IT부품 공장을 방문하고, 오후 3시 넘어서 김사장님의 가방공장이 있는 대봉(大鳳)을 찾았다.

 

큰 봉황새를 상징하는 탑을 지나 해안가 별장을 바라보면서 세워진 가방공장은 외양이 세련되고 깨끗했다.

흔히들 피혁이나 봉제 공장은 환경적으로 낙후된 모습을 연상케하지만 김사장님의 가방공장은 달랐다.

바닥면적이 200여평인 무주(無柱) 구조의 트러스 건물에 300명의 여공들이 미싱 앞에서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첨단 부품 공장 같았다^^

 

생산라인을 훝어보면서 중학교 졸업도 안하고 가출해서 파주의 새마을 공장에서 열심히 가방에 나사박던 생각이 났다.

아프지만 30여년 전 옛 생각을 조금은 참고, 해물요리로 저녁을 때운 뒤 시골 마을의 가라오케를 찾았다

말도 안통하고, 노래도 중국 노래밖에 없고 할 것이라곤 맥주마시고,  종업원들과 주사위 놀이 밖에 할 게 없는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방으로 왔다.

 

목요일 아침은 쌀쌀했다.

심천 봉황산cc / Phoenix Hill Golf Club

 

늦가을치고는 싸늘했다. 그것도 모르고 반팔만 잔뜩 가지고 오다니...바람막이를 빌려입고 간신히 약기운으로 라운딩을 했다.

수시로 사탕과 함께 중국 귤(작고 당도 많아서 목에 좋음)로 부은 목을 적시고 버티지만 한국의 덕평CC보다 더 요철이 심한

페어웨이로 인하여 긴장은 사라지고, 첫 홀 그린에 안착한 후 실망이 하늘을 찔렀다.시커멓게 죽고, 곳곳에 상처입는 그린(Green). 이곳의 그린은 가을 철 되면 우리 겨울보다 더 색이 검게 변하게 되는데 참, 난감했다.

 

그렉 노먼, 애니카 소렌스탐 등 12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12개 코스에 세계 최대의 규모(총 216홀)를 갖고 있는,

기네스 북에 등재된 미션힐(Mission Hill)cc. 심천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션힐이었는데 은근히 기대했던 나에게 선보인 골프장은 

이게 아니었다. 전설의 새 대붕(大鵬)을 상징하는 봉황산(Phoenix Hill Golf Club)cc. 라운딩 내내 서운하고 허전해서 별 재미를 못느꼈다.

 

오후가 되니 햇살도 많아졌다.

언제까지 꿀꿀한 골프장을 탓할 수는 없어서 새롭게 마음을 먹었다.

 

언제부터인가 추운 겨울이면 공이 없어져도, 퍼팅이 잘 안되어도 좀 봐줄 것이라는 이상한 심리가 생겼다.

마치 10.26사태가 일어나면 군대 안가도 될 것 같은 야릇한 마음처럼

바운딩이 심한 겨울에 악착같이 해야 되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그 심리적 위안이 깨졌다.

아는 교수들과 같이 12월 30일 목천 우정힐스cc에서 라운딩을 했는데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페어웨이나 그린이 얼어서 나의 이상한 심리(?)가 발동을 했는데,

박교수는 전혀 동요안하고 Par 행진을 계속 이어나갔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스코어 카드는 90대 중반이지만 박교수는 여전히 80 초반이었기에

다시는 겨울이니 눈이오니 그린이 안좋으니 등등 핑계대지 않기로 했다.

 

셋이서 중국돈 1000위안(Yuan) 씩 걷어서 스킨스를 하기로 했다

약발인지 첫 홀 Par 5를 세컨 샷에 올리고 약 2.5미터 버디펏을 아깝게 놓쳤다

일단 기세를 잡은 것 같았기에 아주 시원한 내리막 홀인 두번 째 홀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오른 쪽으로 호수를 끼고 약간 휘어져 있는 Par 4. 세컨 샷에 벙커에 빠졌고, 두 사장님들은 투온을 하였다.

3미터와 4미터 버디(Buddy) 펏을 성공시키면서 나에게 쌍버디를 안겨주어 흐르는 콧물을 멋게 만들었다.

 

힘이 빠졌다 이렇게 라운딩하면 목이 더 부어서 내가 질 것 같았다

방법은 두 사장님을 서로 붙게 하고 , 난 틈을 봐서 한 홀만 이겨야 할 것 같았다.

작전은 예상대로 성공하였다 전반 마지막 홀 Par 5에서 OECD에 가입한 전사장님이

셔드 샷을 그린 에어프런에 갖다놓고 내리막 어프로치를 하게 되었는데 공이 마구 굴러 왔다갔다해서  5온에 쓰리퍼터를 기록했다.

배판에 벌금까지 700 위안을 먹었다.

 

후반전은

열심히 잘치는 전사장님의 뒷덜미를 잡는 작전이 유효해서 14홀까지 내 주머니에 2000위안 넘게 들어왔다.

 

그런데 공 못치는 노교수님과 한교수님이 오전 내내 원자력발전소 견학갔다 발마사지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인지

골프장에 카트 타고 견학(?)을 왔다. 그 덕에 우리는 골프를 중간에서 끊고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미션힐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도 기억이 잘안나는 골프장이기에 가볍게 털고 나왔다.

 

저녁은 해산물로 걸쭉하게 먹었다고 다들 말하지만 난, 입맛이 없었고, 딱히 맛있는 것이 없어서 고민이 되었다.

속에 무엇이 들어가면 약을 먹었다. 결국 심천 시내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한참을 자고 나니 기운이 돌아왔다.

 

중국은 이상한 나라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는 나라인데

희안한 것은 방에 난방이 안들어온다는 것이다. 상해도 그렇고, 홍콩 옆의 심천도 에어콘은 되는데 난방이 안되는

이상한 특구(?). 법으로 금지를 시켜놨다고 하던데 이해가 안되었다.

북쪽의 북경이나 심양 그리고  옌변과 같은  동북 3성은 난방을 허용하지만

남쪽은 법으로 금지하는 바람에 차라리 실외가 더 따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으시시한 추위 아니 차가운 느낌에 감기는 정말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아프니까, 한국이 떠오르고 몸이 쑤시니, 서울의 손길이 그립고

잠시 눈을 떠서 땀을 닦고, 또 자고, 깨고, 또 닦고...

 

비몽사몽 간에 문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김교수님의 여권이 없어졌다고 한바탕 소동이 났다^^

이사람 저사람 다 불러놓고, 가방이란 가방은 다 뒤지고.... 알고보니 가방에 잘 넣고 나서 그렇게 찾았다. 

아마 중국 여행 직전에 전신마취까지 한 중이염 수술의 휴유증인 것 같았다

김교수님은 나중에 혜주(惠州)에 가서도 몇 번의 실수를 거듭 하고나서 50이 넘은 것에 대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고민하였다.

 

이교수님도 올 해가 꽉 찬 58년 개띠였다.

2001년 유럽을 같이 갈 때는 동안(童顔)이기에 몰랐는데, 몽골의 게르(Ger)에서  큰아들이 왜소증을 극복하고자

S대 공대를 휴학하고, 의대를 들어갈려고 한다고 고민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게다가 형수님이 불교를 믿는데 어느 날인가 보시(輔施) 중에 가장 좋은 보시가 육(肉)보시라고 스님이 그랬다고

이삼일 안에는 꼭 한번 씩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해서 엄청 괴롭힌다고 할 때 너무 우펐다.

 

금요일이 밝았다.

 

1팀은 아파트 구경을 가기로 했다. 심천의 부동산 경기는 하루가 다르다고 했다.

전사장님과 김사장님은 아파트 세 채에 별장까지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적기라고 했다.

헌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부동산 경기가 꺽일 줄 모를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미분양 물건에 대하여 국내는 숨기는 실정인데

이곳은 전화번호를 더 크게 건물 곳곳에 붙여놓고 알리고, 그러면 집값은 1년에 배로 뛴다고 한다. 요지경이었다.

 

이상한 나라, 중국의 심천에서 3일 차,

일요일 일본 출장이 잡혀있는 홍교수님은 중경으로 들어가는 이사장님과 김사장님과 같이 공항으로 가고

김교수님과 이교수님 그리고 나는 조선 족 가이드와 함께 렌트를 한 뒤 짝퉁파는 곳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심천의 짝퉁시장은 광저우보다 못했다. 여성용 불가리아 손목 시계를 살려고 깍다보니 오전만 잠시 빌린(?)

조선족 가이드 이설(李雪)양이 집에 가야 한다고 지하철을 타고 가버렸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렌트카에는 한족 뿐이었다.

말도 안통하는 한족을 앞에 두고 주차요금부터 시작해서 혜주까지 잘 가는지, 아니면  혜주의 L사를 잘 아는지 묻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정말 갑갑했다. 2박3일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M대학 김교수님의 추천으로 심천 옆 혜주(惠州)에 있는

L사 법인장을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되었다.

혜주 도착 20분 전에 겨우 연락이 되었다.

알고보니 법인장 핸폰를 종이에 적다가 38과 83를 헷갈리게 적은 후 그 전화번호로 열심히 걸었으니 

연락이 될 리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더니 조선족 아가씨가 입구에서 마중을 한다

지금까지 묵었던 호텔보다 10배는 더 좋은 호텔 앞에서....

 

둥관(Dongguan) 칸데 인터내셔날 호텔(Kande International Hotel)

 

중국 역대 왕 중에 강제(康帝)의 고궁 자리에 세운 호텔이라서 그런지 이름도 특이했고

시설도 좋았다. 아쉽다면 카드를 오픈시켜달라고 해서 주었는데 1100불(US)이나 승인이 나버렸다.

 

잠시 우리는 두가지 고민에 빠졌다. 첫째는, 누가 이 호텔 비를 지불할 것인가 하는 것과 둘째는, 오픈이냐 승인이냐 하는 문제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고민은 접어두고 주위의 한국식당을 찾아서 육계장으로 허기진 배와 부은 목을 달라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가까운 골프장에 예약을 했으니 2시까지 와서 시작하라고 해서 허겁지겁 준비하고 라운딩에 임했다.

법인장은 회사 산행이 있다고 인사만 하고 가버리고, 셋이서 열심히 공을 치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사고를 저질렀다.

어지러운 탓인지 내리막 길에서 핸들을 잘 못 꺽어 카트가 벽에 부딪치면서 핸들이 돌아갔다.

불안한 감을느끼면서 바꾸어주는 카트를 타고 무사히 라운딩을 마쳤는데 웬걸 무슨 종이에 4,828엔(우리 돈으로 50만원)을

수리비로 물어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라운딩 비용이 이렇게 많나 싶어서 들여다 보았는데, 수리비였다.

아뿔사 중국에서는 즉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처리하는 것이 원칙인 것 같았다.

 

호텔비에 라운딩비 게다가 카트수리비까지 해결해야 한다면 여기를 왜 왔나 싶기도 해 짜증도 났지만 말이 안통하니 갑갑했다.

지나가던 조선족 가이드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원칙 앞에서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 중국 특유의 고집이 우리를 궁지로 몰았다.

부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은 부정이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각자의 맡은 바 임무가 중요한 중국의 사회주의식 날카로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낼 또 우리가 오니까 말통하는 법인장이 해결해 줄 것이라 말하고 골프백을 맡기고 나올 수 있었다.

내가 핸들을 잘 못 돌려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말을 하면 안되는데, 말을 하게 되고 부은 목은 팅팅 부어서

바닥까지 기운이 떨어져버렸다.

5위안 짜리 낡은 택시를 타고, 지나치는 길거리를 바라보면서 만약 우리가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면 무엇을 하면

잘 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기회의 땅인 것 같은 중국이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경제신문엔

청도,연태 등지에서 쓰러져 가거나 야밤도주하는 한국의 액세서리 기업의 실태가 심상치 않게 보도된 것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심천에서 우리를 따스하게 보살펴 준 김사장님이나 전사장님 역시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을 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잦은 법률 및 제도 변경과 인력난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산하거나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찌보면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 사장은 하루 하루가 전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28층 짜리 칸데 인터내셔날호텔에서 우리 방은 6층이었지만 밖의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혜주(惠州) 주위를 감싸고 흐르는 강과 호수. 강을 기준으로 구도시와 신도시가 나름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구도시의 서호는 중국에 서호가 많은 탓인지 혜주서호(惠州西湖)라고 이름이 지어져 있었다

이태백과 두보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항주의 서호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혜주의 서호도 밤에 보니 참 아름다웠다.

 

골프가 좋아 이곳까지 오다니.... 창가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 창밖에 펼쳐진 경치를 보고

골프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난, 니가 이상하게 좋아. 아팠지만 금요일 밤도 약을 먹고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 저녁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쌀쌀하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했으나 입을 것이 없어서

얇은 것만 서너개 입고 바람막이는 김교수님에게 빌려입고 나섰다. 6시47분 티옵, 한국 시간으로 8시가 다되어 티업이라고 하지만 사방이 컴컴한 주위를 배경으로 라운딩을 준비한다는 것이 여간 곤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날씨는 좋았다. 새벽 바람이 몸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국의 낯설은 풍경은

한결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법인장은 오후에 이곳 중국에 진출한  모(某)전자 사장과 다른 곳에서 라운딩이 잡혀있다고 먼저 가고 우리 셋은 시내로 들어왔다.

익숙한 솜씨로 한국 식당에 들어가서 35위안 짜리 육계장과 떡만두국을 시켰으나 육계장에  비하여 떡이 안익은 탓에 맛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바라본 창밖의 혜주 서호(西湖)의 모습. 몸만 안 아팠다면 밖으로 나가서 서성거리기 딱 좋은 주말이었다.

 

중국의 주말은 풍성한 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사지 받고 내려오면서 한바퀴 둘러본 백화점이나

머그컵을 잔뜩 싣은 구르마 위에 낡고 보잘 것 없는 것을 잔뜩 싣고 손님을 기다리는 표정에서 풍성함과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보는 풍성함은 많은 사람들과 많은 자판들이지만 내가 들여다보는 풍성함은 이상야릇한 길거리 음식과

조금은 낡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이기에 어딘가 허전했다. 당시 중국돈 1위안이면 우리돈으로는 120원 정도인데,

우리에게 100원은 점점 가치가 떨어지지만 중국에는 먹을 것이 많았다.

 

토요일 오후, 이교수님이 자연과 인간(윤리) 그리고 과학 간의 관계에 대하여 한마디 했다.

 

자연(自然)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약한 자를 먹어치우는 것에 대하여 죄가 아니었다.

병들고 힘없는 것은 강한 자가 먹어버렸고 그것이 흐름이었다. 헌데 윤리(倫理)는 그렇지 못하고, 약한 자를 도와주고

그것이 도리(道理)라고 하였다. 결국 인간은 윤리와 상충된 괴리를 해결하고자 과학(科學-기술)의 힘을 빌리게 되었던 것이다.

 

토요일 저녁, 같이 식사하자고 하던 J전자 사장은 사모님이 감기 몸살로 동석하지 못하고, 법인장과 총경리인 정부장 그리고

우리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소식주의자인 이교수님과 달리 이름이 같은 이법인장은 식사를 왕성하게 하였고,

술은 좋아하나 우리가 오기 직전에 한약을 먹는 바람에 술을 먹을 수 없어 간단하게 홍주(紅酒)를 한잔 하기로 했다.

 

홍주(紅酒)

개인적으로 중국을 많이 간 것은 아니지만 심양, 북경, 연태, 상해를 거쳐 이번 심천까지 중국의 해안선을 따라 쭉 내려오면서

여러가지 중국 술을 마셔보았지만 홍주(여기서는 포도주라고도 함)를 마셔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술의 역사는 5천년 전 까지 거슬러 가는데, 역대의 왕후장상. 영웅호걸. 문인묵객(文人墨客) 중에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술은 옛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과 사교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주는 '백주(白酒)'와 '황주(黃酒)' 두 종류로 분류되는데 홍주는 황주(黃酒)의 일종으로 중국남방 복건(福建),

태만(台灣), 절강(浙江)등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반면 백주(고량주)는 독특한 향으로 인해 처음엔 접근하기가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뒷 끝이 좋아 매력은 더 깊어지게 된다. 특히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백주에다 레몬을 섞어서 부드럽게 하여 먹는데, 넘기기가 좋았다. 호기심에 홍주 반잔에 사이다를 섞어서 보지만 와인에 탄산음료를 섞은 정도였다.

 

일요일은 어제의 푸근한 날씨를 질투했던지 바람이 심했다.

 

혜주의 탕천(Tanspring Golf Club) 골프장은 시내에 위치한 탓에 페어웨이가 좁고, 그린 주위가 헤저드나 벙커 등

위험이 곳곳에 노리고 있기에 웬만한 싱글도 자기 핸디를 찾기 힘든 곳이었다. 첫 번 째 홀은 Par4로 오른 쪽 도그렉인 덕에 그린이 안 보였는데 그만 드라이버 샷이 쪼루가 나서 멋지게 보낸 세컨 샷마저 방향을 잃고 사라지게 되었다. 둘째 홀도, 셋째 홀도 바람`때문에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여서 보기(Bogey)하기가 어려웠지만 감기로 인하여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드라이버도 안정되고, 칲샷으로 롱홀에서 버디도 뽑아내고,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일요일 점심은 J전자 사장님이 한턱 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J전자는 코스닥 등록 기업인 줄 알았는데

상장기업이었다. 핸드폰에 사용하는 진동모토로는 세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데 오너가 기술자 출신인지

고량주 한잔 들어갈 때 마다 말하는 위험수위가 높았지만 구전 마케팅을 참 잘하는 것 같았다.

기업이 크기 위해서는 3년이 꼭 필요한데, 3년만 버티면 그 다음 성장 여부는 마케팅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되고,

광고와 홍보 즉 마케팅을 통하여 성장하여야 한다는 점을 J전자 김사장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감기도 양심이 있는지 5일 째 되니 누런 코가 보이고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람만 아니라면 걷고 싶었지만 발마사지 끝난 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각 자의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저녁 8시 30분 소식주의자인 이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단하게 햄버거 하나 같이 먹고 오지 않냐고 하길래

맥도날드 가게에 가서 중국 돈을 다 털어서 딱 맞는 햄버거를 사고, 반 짤라서 사이좋게 먹었다. 둘이 걸으면서 RFID와 관련된

운영자 교육 방안과 고용보험을 통한 교육비 환급방법 등을 열심히 상의했다.

어느 새 우리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국에서의 생활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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