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골퍼
오늘도 나는 지각을 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4년 차.
늦게 시작한 탓에 실내연습장의 프로 말에
어찌 그리도 실감나게 인식했는지 퍼블릭갈 때도 누구보다 일찍갔다.
어렵게 머리 올리고 나면 누구나 배우는 골프 에티켓.
지금은 골린이(골프와 어린이를 합친 말로 골프 초보자를 가르킨다)라는 용어가 생겨서
애교로 봐주지만 당시만 해도 골프 입문 4년 차에게 골프 에티켓은
듣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훨씬 교훈적이고 생동감있게 오래남게 된다.
골프 에티켓(Etiquette)은 크게 세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는 부모가 돌아가시 전까지는 골프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
둘째는 티박스나 그린(Green)에서 상대방이 자세를 잡을 때 거추장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떠들면 안된다.
셋째는 핃드에서 동반자에 지장을 주는 플레이나 벙커 탈출 후 정리 등이 필요하다.
위 세가지 골프 에티켓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골프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은근히 황당하지만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에티켓이기에 깊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골프 취소는 생각할 수도 없지만 부킹과 지각도 위의 범주에 안에 들어가기에 조심해야 했다.
골프 부킹(Booking)은
개인적으로 회원권도 없고, 초대받아서 가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는데
골프 시작한 지 일년도 안되는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부킹을 해야 했다.
대략난감했지만 못한다고 말도 못하고 해보겠다고 했으니 책임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골프장 부킹 시스템조차 이해도 못하면서 부킹을 한다고 했으니...쩝
어쩔 수 없이 처음 머리 올린 동두천 다이너스티를 잘 알고 있는 여행사 사장에게 신신당부해서 부탁한 부킹.
이상하게 꼬여서 주말 하루 전에 부킹이 안되게 되었을 때의 그 난감함.
당혹스러움에 밤을 도와 고민하고 가슴 쓰린 시간을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우울하다.
그 기억 때문인지 안가면 안갔지 절대로 부킹하겠다는 얘기를 그 뒤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골프의 구력이 쌓여질 수록
부킹하는 방법도 나름 터득하게 되었고, 불가피할 때는 추진하였다.
보름 이상의 고통을 안고...
부킹(Booking) 땜시 가슴아픈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었만
오늘처럼 나의 일방적인 실수로 발생한 지각은 상대성이기에 아무리 내면의 공(空) 이 깊다고 해도,
도덕군자(道德君子)일지라도 허물어지게 된다.
요근래 이상하게 지각골프를 많이 한다.
9월3일, 양주cc에서 앞서가는 트럭 때문에 시작 20분 전 도착했고,
9월21일, 79모임 신라cc에서도 여유부리다가 허겁지겁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며,
9월17일, 한화 프라자cc는 늦잠자서 간신히 8시 티업할 때 도착한 뒤 오비 2방 내고, 쌍버디 맞으면서 보답했다.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9월23일, 리베라cc.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했고 한남대교를 지나 요리조리 피하여 양재까지 왔는데
기흥까지 85분 소요된다고 큼직하게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2시 티업인데 양재에 12시10분이라서 불안함에 얼른 국도로 빠졌다.
민속촌까지 그럭저럭 잘빠졌는데, 기흥가는 국도가 꽉 막혔다.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고매리로 빠지는 왕복 4차선 길.
하나는 2차선 국도.
주저하다가 악마가 꼬셨는지 기흥으로 가는 고매리 길로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5분도 못가서 앞이 꽉 막혔다. 신작로라서 중앙분리대가 너무 잘 되어 있었기에 유턴도 못하고
애간장만 태웠다. 차를놓고 백을 들고 뛸까도 생각해보고,
유턴도 못하게 만드는 앞 차를 원망도 해보지만 2키로미터에 1시간 걸렸다.
미련하게 갇혀서 보낸 1시간 덕분에 2시 티업인데 1시간 늦게 도착했다.
다행인지 많은 골퍼(Golfer)들이 늦어서 우리 일행도 30분 뒤에 티업을 했고,
2번 홀 Par 5 셔드샷부터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의 동반자 중에 한 명이 시테크(Time-Tech)로 유명한 윤은기박사였고,
윤박사도 아침 라디오 방송 때문에 늦어서 3번 째 홀이 지난 뒤에 합류하는 바람에
지각 골퍼로서 비난을 조금은 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협업경영과 X경영으로 AX 시대에 경영이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지만 그 당시 나는 골프 컬럼니스트로서의 윤박사를 흠모했다.
"비즈니스는 필드 위에서 이루어진다"라는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윤은기의 골프마인드, 경영마인드>라는 책도 있지만
무엇보다 골프장 대표와 회원이 만나서 라운딩을 한 뒤 A4 한 장 짜리의 골프칼럼을 게재하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골프경영대상>을 십여 년 동안 추진하게 되었고, <콘텐츠, 플랫폼(Platform)으로 날다>라는 책을
쓰게되었다.
유명세 이상의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동반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어서 나의 지각이 빛을 바랬지만
그 뒤로 내가 지각을 할 때면 속으로 "내가 윤박사인가?" 라고 자문하게 된다.
골프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기에
지각에 자유로울 수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지각했을 때 동반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소중한 시간에 보답을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영화 <타짜>를 보고 2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공연예술에 신경쓰다보니 영화는 평(評)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남들처럼 날잡아 명절 때
영화보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영화 <타짜>는 원소스멀티유저(One Source Multi User)로 하나의 원천 콘텐츠가 거점 콘텐츠로 확산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허영만만화가의 원작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뮤지컬 스타인 조승우의 연기와 김혜수의 나신(裸身)이 선명해서 그런가
새벽에 알람을 맞추어놨는데도 불구하고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6시 30분이었다.
새벽 2시30분에 잠깐 잔다는 것이 꿈에서 주연배우들을 만났는지 5시 모닝콜도 못들었다.
허겁지겁 출발해서 7시에 한남대교에 도착했다.
수원cc정도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잠시 15분만에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호법IC까지 20분 걸린단다.
문제는 양지IC까지 비상등을 켜고 아슬아슬하게 갓길을 따라 가는데 경찰차도 갓길로 주행하고 있었다.
늦으면 판단력이 떨어지는 지 계속 경찰차를 따라 갔더니 갑자기 앞에서 정차하더니만 나보고 서라고 한다.
아, 안그래도 늦었는데... 변명하는 나를 보고 경사가 한마디 한다.
"잘못했다고 해도 시원잖은데 웬 변명이냐고? 자기가 맘만 먹으면 20분동안 잡아둘 수 있다고" 하는데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미안하다고 한 뒤 갓길에서 주행선에 합루했다.
결과적으로 양지IC에서 나가 국도타고 20키로만 가면되는데 고속도로만 믿고
호법분기점까지 40키로를 돌아가는 바람에 한남대교에서 뉴스프링빌cc까지 1시간 걸렸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다른 코스까지 가서 더 늦어졌는데, 일행은 알프스코스 4번 홀을 지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그린에 올라가서 퍼팅하고 있었다.
좀 늦으니까 친구에게 한 두팀 패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주말에는 노무현대통령도 티업시간을 조절못한다고 패스없이 진행한 일행.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손을 흔드는데 다들 영 떱은 표정이다.
나이스는 아는 얼굴이나 용호와 한호는 더더욱 모르는 얼굴이기에 나이스에게 기대 보지만 이 친구 한 술 더 떠서 구박한다.
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선수단은 뉴욕 메츠와의 경기를 마치고, 뉴욕발 워싱턴행
전용 기차에 올랐다. 헌데 잘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선로를 이탈했고, 대체 열차를 타고
평소보다 3시간 가량 늦게 도착, 단체로 경기장에 지각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불가피한 사건이나 사고로 발생한 지각은 양해가 되지만
개인적인 지각은 때론 추억으로 때론 상처로 자리잡게 된다.
멘탈 게임인 골프를 하면서 지각하는 정신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동반자들에게 민폐를 주는 지각골프. 마음이 아팠다. 후반 올림푸스코스에서 첫 홀에 일행에게 멀리건(Mulligan)도 주고,
우승한 한호를 생각해서 식사는 등심으로 쏘고 나니 헤어질 때 분위기가 좋아졌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지각에 대해서는 동반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소중한 시간에 보답을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앞에서 언급한 골프 에티켓 중에서
두번 쨰와 세번 째는 서로 서로에게 자상하게 알려줌으로써 배우지만
골프 약속에 있어 취소나 지각 그리고 부킹은 정말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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