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의 모음이라고 한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은 기쁨보다는 아픔이 먼저 떠오르고, 그 아픔을 동반한 특별한 경험은 오래동안 남게 된다.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방문할 때는 비즈니스가 우선이었기에 골프백없이 골프채를 몇 개 들고 갔지만
이번 심양에서 단동까지 2박3일 골프투어는 처음으로 해외 골프 투어를 시작했기에 의미가 있었고,
처음이라는 설레임보다는 아픔을 잔뜩 안겨주어서 지금도 해외 골프 투어를 할 때면 그 때의 상처가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잡아먹게 하였다.
2005년 초여름, 우연히 아주 우연찮게 10여 년 전의 직장 동료인 정사장을 충무로에서 만났는데 나에게 준 명함에
<정동성 골프투어 대표 정동성>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낯설지만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는 말에 선뜻 속아서
심양에서 단둥까지 골프투어를 준비하게 되었다. 대전 엑스포 93 준비할 때도 명함에 <일꾼 정동성>이라는 선명한
글씨에 믿음이 가서 같이 일을 하다가 회사의 영업이사로 영입했지만 너무 쥐색잡기에 능하다 보니 도저히 컨트롤이 안되어
내가 먼저 그만두면서 인연이 다한 줄 알았는데 길거리 헌팅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도 씁쓸했다.
2005년 8월 5일 출발해서 8월 7일까지 2박3일에 54홀.
시작부터 이곳 저곳 알아보고, 어느 정도 분위기를 터득한 다음에 티켓팅은 돈만 관련되지 않는다면 재미있는
정사장에게 카드 수수료 4%까지 주고 했고, 현지 랜드사는 정사장을 통해 심양, 단동 전문 여행사인
울트라여행사의 정사장을 소개받아 진행하기로 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둘다 정사장이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심양(沈陽 Shenyang)의 성경골프장이었다.
아시아 LPGA가 개최되었던 성경골프장(Shenyang International Golf Club)은 청나라 황실의 황족들의 휴양지로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쌓여 그림같은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중국 북방의 도전적인 골프장으로 유명했다.
우리가 찾았을 때에는 약간의 비를 머금은 탓에 페어웨이가 젖어서 그렇지 오랜 시간을 간직한 채 이루어진 소나무 숲이 장관이었고 페어웨이와 그린 모두 양호했지만 비행기에 도착해서 골프장까지 이동 후 락커를 거쳐 티박스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3홀을 포기해야만 했다. 워낙 골프장 상태가 좋아서인지 불만이 적은 만큼 라운딩 못한 3홀에 대한
미련은 쉽게 사라졌지만 그 다음 날, 단동 오룡(Wulong Golf Club) 골프장에서의 라운딩은 여행사와 현지 랜드사 간의 호흡이
라운딩의 질(質)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의 선양(沈陽)으로 알려진 심양(Shenyang)에서 아쉽지만 흐믓한 성경 골프장에서의 기억이 채사라지기도 전에
아침부터 출발하려고 승차한 우리들에게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연락도 안되었다.
말도 안통하는 기사의 핸드폰으로 수소문지만 가이드 전화가 꺼졌다는 것만 확실하게 들려서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행사 정사장을 찾아 서울까지 멀리 돌아갔다 오는 로밍 전화를 붙잡고 통화를 하지만 가이드는 오지도 않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갔다. 간신히 연락이 되었고, 아파서 못오게 된 가이드를 대신해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타로 나온
가이드를 태웠지만 시간은 10시가 넘었다.
티옵(Tee-off)이 2시인데 심양에서 단동까지 2시간에서 2시간 30분 걸린다고 하니 잘 하면 점심먹고 라운딩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심양에서 단동으로 가는 와중에 멀리서 보이는 봉황산처럼 우리들에게 우뚝 선 장애물과 극복하기엔 너무 심한
아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나론 부족해 두 가지, 세 가지 장애(障礙)가 우리 일행 앞을 막아서면서 아픔을 주었다.
늦게 나타난 가이드의 공백으로 인한 지각 출발은 시작이었고, 두 번째 버스가 가져다 주는 아픔은 스트레스였다.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버스. 80키로 이상은 밟아도 밟아지지 않는 아주 오래된 버스. 껍데기는 벤츠지만 엔진은 6.25 때 엔진인지
그 잘생기고 시원한 고속도로를 중국 버스는 뜨거운 태양을 친구삼아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원래 일정은 오전에 봉황산을
거쳐 단동으로 가서 압록강 유람선도 타고, 끊어진 철교도 본 뒤 중식을 하고 오룡 골프장으로 가서 2시에 티업을 하기로 했는데
철없는 버스로 인하여 일정이 엉망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목마려운 놈이 우물판다고 우리들이 알아서 버스 안에서 미리 미리
옷갈아 입고 썬크림 바르고 가방에 준비물까지 챙겨야 했다.
그 와중에 버스 기사는 길을 잃어버려서 이리저리 몇 곳을 돌다가 드디어 골프장을 찾았지만 우리는 먼거리의 푸른 페어웨이에
안도감을 느끼고, 가까운 거리의 골퍼들의 웅성거림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식당에서 준비된 밥도 먹고, 더위에 시달린
목도 축이고 기다리는데 티옵이 늦어진다는 소식은 팍팍한 목을 더 조여왔다. 전동카는 타고 싶어도 모자라서 탈 수가 없고,
2시 티업 시간은 한국 사람들 목소리에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고, 일행 중 한 둘은 화장실에 가서 안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국의 골프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골프장에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비행기 도착 시간과
티옵 시간이 일치해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골프장은 한국 사람들로 항상 만원이었다. 부족한 락커 때문에 버스 안에서나
전기나간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깡총깡총 티박스로 가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피서철 바닷가 같았다.
나도 갑자기 배가 이상해서 클럽하우스 2층의 화장실을 갔는데 깜짝 놀랬다. 좌변식이기는 한데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야 했다.
고민도 잠시 뭔가 꾸르륵하면서 막 나올려고 하기에 얼결에 중국의 이상한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렸지만 반은 변기 옆으로
삐져나왔다.
우리 일행의 절반을 지치게 만든 세 번째 아픔은 식중독으로 인한 고통이었다.
나에겐 시작이었지만 설사 증세를 처음 보인 것은 젊은 신교수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봉황산을 바라보면서 포즈를 취하고,
물통을 하나씩 받아서 차에 올라와 출발을 하려고 해도 오지않는 신교수를 누군가 타박할 때만 해도 신교수가 행동이 좀 느린 탓이겠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전체 일행의 50%를 휩쓸고 지나간 식중독의 전초였다.
여름엔 보다 시원하고 선선함과 순수함을 간직한, 연평균 22도 라는 보랏빛 거짓말에 속아서 온통 한국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고자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나를 미워하기엔 흐르는 땀이 너무 많았고, 라운딩하면서 하체에 힘을 주기엔 너무 불안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가 그늘집의 화장지는 왜 그렇게 두터운지 전반을 돌고 나니 거시기가 다 헐었다.
먹으면 쏟아질 것 같아서 찾아낸 방법이 사이다였다. 전후반 내내 내가 먹은 사이다가 3병이었고, 화장실은 4번 갔었다.
나보다 좀더 심한 이교수님은 신문지까지 찾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쉬고 말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뽀족한 것이 없었다.
전 날 북한식당에서 "반갑습니다" 라는 노래 소리와 뒤 엉킨 소주가 전부였는데....배아픈 사람들에게 벌주로 위스키를
더 마시게 하고 발마사지받은 후 잤는데, 내 파트너인 윤차장은 밤새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공을 치고, 단동의 끊어진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공항가는 버스 안에서 의견을 종합한 결과 신교수와 이교수 그리고 윤차장, 나를 포함해 4명은 북한식당에서 조개를 먹었다.
50대인 3분의 교수님들은 먹지 않았고, 40대인 우리들만 맛있게 먹은 조개가 우리들을 괴롭힌 주범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슬프게 한 아픔이자 참 넘기 어려운 장애(障礙)는 여행사의 상술이었다.
해가 떨어지면서 찬바람이 불고 아래로 더 이상 빠져나올 것이 없어서 힘이 빠진 상태에서 최상의 샷이 나올 것 같아
후반을 맞이했는데 라이트가 안 보였다. 11번 째 홀에서 한국 사람들 4명이 내기를 너무 심하게 하다 치고 박고 싸우는 바람에
구경하다 보니 해는 넘어갔고, 우리들은 13홀 앞에서 전혀 앞이 안보이는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화가 났다. 사전에 여행사 정사장이 골프장을 가보지 못한 상태로 현지 랜드사에 골퍼(Golfer)를 보냈고, 현지 랜드사 정사장은
전체 18홀 중에서 9홀만 라이트 시설이 되어있다는 사실도 알면서도 라이트 있는 곳을 먼저 라운딩하게 한 뒤 일몰(日沒) 때문에
후반의 3분 1을 라운딩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의 정사장은 현지 답사를 못가보고 상품을 팔았다지만 어째서 현지 랜드사 정사장은 우리를 라이트 시설이 없는 곳을 먼저 라운딩하게 만들었을까? 나중에 알고보니 일단 서로 모르는 골퍼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샷건(Shot Gun)방식으로는 해결이 안되니 밀어내기를 하였고, 라이트 시설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내야하는데 그 비용까지받으려면 머리아프니까 그냥 양 떼 몰듯 내몰고, 지치면 이 먼 곳까지 와서 화 낼 사람 어디 있냐 라는 식으로 마무리한 뒤 술 한 잔에 여러가지 핑계를 앞세우는 전형적인 상술(商術)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한가지 목적, 굳이 목적이 없어도 주제(Theme)를 정해서 간다면
돌아오는 길에 뭔가 채워진, 보람찬 여행이 될 것 같았다.
1990년 일본의 오사카 꽃 박람회를 처음으로 가서 온 몸으로 느꼈던 박람회와 일본의 디즈니랜드가 별천지 같아서
호기심 많은 서른 살의 남자를 사로잡았던 테마파크(Theme Park). 그 뒤론 해외 여행을 가면 주로 박물관을 많이 보게 되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상트 페테르브르크의 에르미따쥬 겨울궁전, 런던의 대영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등
이제는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세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박물관은 규모가 크든 작든 한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전해주는
살아있는 보고(寶庫)로서 가치를 지니지만 골프장은 규모에 따라서, 서비스에 따라서 그 나라의 상품을 구별하게 만든다.
기회가 된다면 세계 100대 골프장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면 어떨까?
먼저 국내의 버킷리스트 골프장을 가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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