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北村)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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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邊雜記

북촌(北村)가는 길

by 세월김 2020.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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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北村)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약속이지만 준비할 것이 없고,

만남이지만 부담이 없기에

나그네처럼 여유롭게 삼청동을 진입한 뒤

북촌생활사박물관을 찾았다.

 

잠시 차를 버리고 걷고 싶을 정도로

한가한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에 오르니 차 안에서도 숨이 찼다.

 

지나가는 과일장수 목소리만 없었지

어릴 적 산동네처럼 정겨운 맛을

느낄 수 있는 길가에서

지인(知人)이 반갑게 맞아준다.

 

한갓지게 다가오는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앞장서서

남루한 한복집 옆 북촌생활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자 마당 한 가운데 우물펌프가 보였다.

어릴 적 마중물 한 바가지 퍼서 열심히 펌프질하면

시원한 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쉽게도 땅 속의 물과 연결이 안되었다고 한다.

학예사의 안내로 방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다듬이와 방망이였다.

마듬이질하는 엄마 소리가 듣고 싶어 앉았는 데

영 소리가 나질 않았다.

아니 엄마의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분명 귓전에 들리는 데 불구하고

그 소리를 만들 수 없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길건너 약속 장소에 들어섰다.

 

케렌시아(Querencia)

스페인어로 피난처 혹은 안식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데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잠시

쉴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장소 라고 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空間)인

케렌시아

스페인이 아닌 한국의 북촌에도 생겼다.

 

올해 금융사에서 퇴직하고 몸과 마음이 따라가는

곳을 찾아 북촌에 와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한 김부사장.

어찌보면 인생 이모작을 위해 마련한 작은

숨터인데

조만간 케렌시아 라고 명명(命名)할 거라고 한다.

 

널찍한 베란다에 앉아

앞을 보니 천년의 기운을 간직한 인왕산의 눈매가

경복궁 너머 서촌마을까지 바라보고 있다.

 

잠시 왕이 된 남자, 광해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싶다.

 

"너, 아직도 백성을 위하는가?"

 

이순(耳順)을 지나 더 바랄 것이 없어보이지만

백성은 커녕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데 급급하고

여전히 욕정(欲情)은 풍부한지라

공간(空間)이 부러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공간에 머물다

저마다 마지막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어떤 모습일까?

 

창업을 하고, 텃밭을 일구고

백세인생을 위하여 꿈을 담아

숨터를 만들지만

지극히 인공적인 인공지능(Artificial AI)

공간일지라도

그 속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0. 09. 19


                      세월(世月)을 읽다_김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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